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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탐정 소설 '아버지들의 죄'의 파격 - 뉴욕 여대생과 목사 아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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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5-08-1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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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고급 아파트에서 20대 여성 웬디 해니포드가 잔인하게 살해됐다. 용의자는 리처드 밴더폴. 웬디의 피를 뒤집어쓰고 뉴욕 한복판을 배회하다가 체포됐는데 감옥에서 자살한다. 경찰이 단순 치정 사건으로 종결하자, 웬디의 아버지는 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며 탐정을 고용한다. 그가 바로 매튜 스커더 Matthew Scudder 종전의 히트를 기록한 미국의 소설가 로렌스 블록이 쓴 '매튜 스커더 시리즈'의 주인공 , 로렌스 블록의 소설 <아버지들의 죄The Sins of the Fathers>의 주인공이자 사건을 해결하는 자다. 스커더는 마땅한 직업도, 수입도 없는 휴학생 웬디가 비싼 아파트에서 사는 배경을 추적하다가 성매매 활동을 한 것과 리처드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바꿔 말하면, 게이였던 리처드가 치정으로 살인을 저지를 확률은 없다는 것. 그럼, 누구의 짓일까? 근래 쏟아지는 젊은 여성 작가들의 스릴러를 읽다가 옛날 탐정 소설을 좀 봐야겠다 싶어서 열었다. 하드보일드 소설은 오랜만인데, 유명하지만 읽어 보지 않았던 로렌스 블록 Lawrence Block 의 작품으로 골랐다. 70년대 뉴욕은 높은 범죄율과 부패한 경찰이 그야말로 '콜라보'하던 시대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뉴욕 고급 아파트에 사는 '대학생 매춘부'와 '동성애자 목사 아들'의 조합이라니. 당시로서는 이게 얼마나 파격적이었겠나? 하지만 50년 지난 지금 읽어 보니 범인도 알겠고,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 범행이 발각됐을 때 어떻게 할 건지까지 다 짐작한 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내 추리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지난 50년간 이미 다른 작품들이 그 내용들을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어서 그럴 거다. 그래도 시원시원하게 얘기를 잘 풀어나가서 중간에 그만 읽어야지, 하는 생각은 안 드는 게 핵심. 그나저나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 '아버지들의 죄'라니. 동성애자 룸메이트가 죽이지 않았단 얘기 아닌가. 아버지는 여기서 둘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아버지. 어느 쪽일까? 가만, 제목을 보면 '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들'이다. 그럼, '어느 아버지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식으로 책임을 물으려는 걸까? (게다가 책에 인용되는 성경 구절을 따지면 더한 의미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제목만 문제가 아니다. 표지도 문제. 떡 하니 성경에 십자가를 주면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는데? 물론, <아버지들의 죄>가 범인을 숨겨두고, 자, 찾아봐요, 하는 책이 아니라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더 관심을 보이는 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 노골적인데? 원서도 표지에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하나 찾아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원서 표지는 범행 도구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탐정의 역할이다. 매튜 스커더는 마치 심판자처럼 군다. '난 네 죄를 알아. 이제 네가 선택해. 죽을래, 감옥 갈래?' 일개 탐정에게 이럴 권한이 있나? 근래 쏟아져 나오는 스릴러에서 알아서 직접 복수하거나 대리로 복수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만하다. 심판자처럼 구는 매튜 스커더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옳은 이유로 잘못된 일을 하는 것과 잘못된 이유로 옳은 일을 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쁜 것인지 궁금했다 ." 그러게 말이다. 뭐가 더 나쁜 건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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